"우리의 만남이 너무 짧았다고 네게 불평과 한 섞인 말들을 했었는데, 한가한 어느 날 홀로 앉아 조용히 지난 여름날들을 떠올려 보니 봇물 터지듯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정말로 수많은 일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그 짧은 시간에 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그러나 또 다시 언제나 ‘좀 더’ 라는 생각과 아쉬움과 그 모든 것들의 여운이 나의 마음 저 안쪽에 남아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것이, 일상에 몸담아 사소한 일을 하다가도 문득 의지에 아랑곳 않고 다시 떠올라 감정을 휘저어 결국 불안한 영혼을 가진 나라는 인간을 잊지 않게 하는데, 그것은 꽤나 고통스럽고 또 애절한 것이어서 과연 이런 상태가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인지는 혹은 나쁜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고 또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고요의 상태로 되돌릴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밖에 없다는 흔하디흔한 말을 흔하디흔하기에 진리로 받아들이는 나는 그 시간을 버티며 지금 여기 고마웠던 너에게 이 조촐한 문장을 보낸다."
오늘 옛문서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이다. 물리적 시간으로는 오륙 년 전이지만, 심리적 시간으로 따지면 십여 년쯤은 전에 이별했던 사람에게 쓴 문장이다. 말 그대로 정말 '문장'인데, 이 짧은 글귀를 부쳤는지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작은 기억의 하나로, 글 쓸 당시에는 이별로 인한 좌절과 분노가 채 삭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 감정과 경험히 승화해 나의 자양분이 되리라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자양분이 어느날 고맙게도 날라와준 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고, 화려하진 않지만 여느 꽃보다 은은하게 향기로운 꽃을 피웠으며, 계절의 순환이 으레 그러하듯 순간 낙엽으로 바스라졌다. 하지만 좌절은 하지 않는다. 다시 낙엽은 켜켜이 쌓여 자양분이 될 것이고, 꽃의 가능성을 내재한 새로운 씨앗이 봄과 함께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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