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길상사를 찾았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이후로 길상사 방문은 처음인듯하다. 늘 굳게 잠겨 있던 법정스님의 거처가 지금은 개방돼 있었다. 물론 암자에서 지내셨던 법정스님이 거의 이용하시진 않던 방이지만, 평소 길상사는 언제든 스님이 오시면 이용하실 수 있게끔 비워두고 있었다. 입적 이후 지금은 법정스님의 영정사진을 모셔 방문자들에게 개방한 것 같았다. 마치 스포츠 선수에게 최고의 영예가 영구 결번인 것처럼 이 방도 법정스님을 기리기 위해 계속 비워두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방문자들은 처마 아래 툇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었다. 조용한 경내 분위기가 평소에는 세간의 소리에 묻혀 듣기 힘들었던 자연의 소리를 더욱 키웠다. 모든 것이 평온했고 각자의 내면의 호수도 일렁임 없이 거울마냥 잠잠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툇마루에서 바라보이는 화단. 문득 생각했다. 법정 스님은 저 화단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기셨을까? 서울에 일정이 있어 왔지만, 빨리 이곳을 벗어나 조용한 암자로 돌아가고 싶어 했을까? 어쩌면 이렇게 비오는 날에는 이곳도 산 속 암자와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시지는 않으셨을까? 속세에 잠시 들르기 위해 길상사를 찾으셨던 스님과는 반대로 속세를 벗어나기 위해 길상사를 찾는 우리들이란 그의 생각을 갸늠하기 쉽지 않다.
몇 주가 흘러 지난 주말, 1700년 한국 불교 역사상 가장 큰 연등법회가 열렸다고 한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30만 명의 불교 신자들이 모였다. 새삼 불교의 저력이 대단하구나 느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겉으로 보이는 저력에 비해 다소 부족한 건 아닐까도 생각했다. 스님들의 수행과 정진부터 중생들을 윤회와 생사의 고리에서 구제하는 영역 모두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법정 스님은 단 한 사람이 대중들에게 대단한 변화와 영감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불교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양적 성장을 바라는 게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규모의 면에서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지 않을까 한다. 돌파구는 질적 성장에 있을 테다.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한 나는 절간을 계속 찾을 것이다. 정진에 최선을 다하는 수행자가 가득한 절간이라면 속세것들은 방문만 해도 숙연해지고 또 마음을 비울수 있기 마련이니까. 이것도 낙수 효과라면 효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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