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구, '과학 사상 17호' 에서
1. 시작하는 말
현대 물리학의 기반이 되는 양자 역학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부터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 현상을 원리적으로나 정량적으로 고도의 정밀성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뜻에서 완성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실체에 대응하는 물리량을 정확히 예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이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적 개념으로 물리 현상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했으나, 양자 역학은 물리적 실체를 나타내는 물리량에 대해 그 이론적 체계 내에서 완벽한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학자마저 양자 역학을 완전한 이론 체계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양자 역학이 물리적 실체를 이해하는데 일상적인 논리와 사고방식을 버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자 역학이 혁명적 사고를 요하는 이유는 자연의 이중성에 바탕을 둔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 또는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이론의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불확정성의 원리와 그에 따른 양자 역학적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물리학이란 어떤 학문이며 자연의 이중성이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2. 물리학의 특징
자연 현상 가운데 몇 개의 물리량을 측정하고 이 양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맺어 주는 것이 바로 물리학의 법칙이다. 물리학은 고전 역학이든 양자 역학이든 물리적 실체에 어떤 양을 대입시킨다. 이 말을 역으로 해석하여 물리량에는 어떤 물리적 실체가 대응된다고 보아도 좋다. 물리적 실체에 물리량을 대응시켜 법칙을 세움으로써 물리학은 적어도 물리학이 기술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 현상의 모습을 시간적으로 정확히 기술해 낼 수 있다. 고전 역학의 경우, 특정한 시간에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아내게 되면 나머지 모든 시간에 어떤 위치와 속도를 갖게 되는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로켓을 쏘아 올리면 1년 후나 그 이상인 몇 년 후일지라도 로켓이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날아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물리 현상이든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사건의 인과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고전 역학의 입장에서처럼 모든 물리량을 한없이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우리의 논리와 일상적 사고방식을 벗어나는 일이 없이 자연 현상을 정밀히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0-8 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를 가진 원자 이하의 세계, 즉 미시적 세계에 들어가면 원리적으로 모든 물리량을 동시에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게 되고, 자연은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물리학자들을 처음으로 당황하게 만든 것은 빛이나 전자와 같은 소립자가 보여 준 자연의 이중성이다. 물리적 실체와 물리량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이 물리학의 특징이며 이것은 고전 역학이나 양자 역학 모두 마찬가지라고 이미 앞에서 설명했는데, 만일 어떤 물리량을 정밀히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자연을 인식하는데 필연적으로 어떤 제한이 따를 것이다.
3. 자연의 이중성
고전 물리학에서 물리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데 대립되는 두 가지 개념을 도입한다. 먼저, 실체와 현상을 구별한다. 물과 물결파를 예로 들면 물은 항상 존재하는 실체이고 물이 진동하여 생기는 파동, 즉 물결파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인 물이 운동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므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 물질이 -여기서는 질량을 가진 물질이라고 하자. - 실체이고 어떤 기본 단위로 되어 있다면, 이 기본 단위는 실체여야 할 것이다. 이 기본 단위를 실체로 볼 때 이 기본단위를 입자로 보며 소립자라고 부르는데,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소립자 중 하나이다. 무엇이 실체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따질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고전역학의 입장에서는 입자는 실체이고 파동은 하나의 운동 현상이다.
입자와 파동은 개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다. 입자는 하나씩 떼어서 셀 수 있는 것이고, 파동은 하나, 둘 이렇게 셀 수 없고 연속적인 개념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자는 어떤 일정 한 범위의 공간에 가두어 둘 수 있는 반면에, 파동은 반드시 전파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것은 입자이거나 파동이거나 둘 중 하나이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할 수는 없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원자 이하의 세계에서는 모든 입자가 파동의 성질도 보이고 입자의 성질도 보인다. 전자파의 일종인 빛도 파동의 성질과 더불어 입자의 성질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이것이 바로 미시적 세계에서 자연이 나타내 보이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이다.
인간의 논리와 사고방식이야 어떻든 자연이 이중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물질을 입자와 파동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고전 물리학적 개념을 버리고 이중성을 받아들여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학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이 새로운 역학 체계가 양자 역학인데, 양자 역학에서는 입자가 갖는 파동성을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이 파동적 성질을 갖고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파동의 성질에서 설명한 대로 파동은 퍼져 나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입자가 파동성을 갖는다면, 공간적 크기를 말할 수 없는 한 점에 불과한 소립자라고 할지라도 공간상의 어느 특정한 점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파동이라고 하더라도 입자의 성질을 갖는다면 어느 일정한 범위의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서로 모순되는 이 성질은 입자가 어느 한 곳에서만 존재할 확률이 1이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존재할 확률이 0이 아니라 어떤 확률을 가지고 우주 공간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해결된다. 즉, 입자를 발견할 가능성은 크든 작든 공간상의 어느 곳에서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곳에서든지 한 번 입자를 발견하면 다른 곳에 입자가 존재할 확률은 0이 된다. 입자-파동의 이중성이 입자의 존재 확률을 나타내는 확률파(確率波)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면 물리량의 측정에 어떤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제약을 수치적으로 나타낸 것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인데, 이러한 원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
4. 불확정성 원리
입자가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갖는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므로, 물리량의 측정에 따른 정밀성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입자를 발견할 확률은 우주 공간 전체에 걸쳐 퍼져 있는데, 어느 한 곳에서 입자를 발견했다면 다른 곳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 0이 된다는 것은 측정 행위 자체가 측정 대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물리적 실체를 양으로 나타낸 물리량은 어떻게 측정되었는지를 분석해야만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사람이 현미경으로 전자를 본다는 것은, 빛이 전자에 부딪힌 후 이 빛이 현미경을 통하여 사람의 눈에 들어와 전자가 있는 위치에 관한 정보를 준다는 것을 뜻한다. 빛은 일정한 파장을 가진 파동인데, 파장이 짧은 빛을 사용할수록 위치를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원리적으로 사용한 빛의 파장보다 더 짧은 길이를 측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빛은 파동이자 입자로서 운동량을 가지므로 전자에 부딪힐 때 충격을 주어 전자를 움직이게 만든다. 파동은 파장이 짧을수록 큰 운동량을 가지므로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려고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하면 할수록 더 큰 충격을 주게 되어 빛이 전자에 부딪힐 때 전자의 속도가 더 크게 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리학자들은 속도라는 개념보다 더 기본적인 개념으로 운동량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전자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할수록 전자의 운동량에 대한 정보가 지니고 있는 정밀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입자의 물리적 상태는 위치와 운동량 모두를 정확히 결정하여 나타낼 수 없고 위치와 운동량 모두에 어느 정도의 오차, 즉 불확정도(uncertainty)를 가지고 기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만일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입자가 어느 곳에 있는지 말할 수 없고,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입자의 운동량이 얼마인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위에서 분석하고 설명한 바처럼, 인간이 자연을 관측하여 어떤 정보를 얻을 때에는 반드시 자연에 어떤 변화를 주고 나서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런데 변화를 준 후 자연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면, 이 정보를 바탕으로 기술한 자연은 실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따르게 마련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입각한 양자 역학은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을 내린다. 측정 이전의 객관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의 가능한 상태가 확률적으로 분포되어 있을 뿐이며, 측정을 통하여 이 가능한 상태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사람이 관찰한다는 것이 양자 역학적 설명이다. 한 번 측정하여 어느 특정한 상태를 선택했다면 그 후에는 반복해서 측정하더라도 선택된 특정한 상태만이 관측될 뿐이고, 이렇게 선택된 상태만이 물리적 실체를 나타내게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측정했더라면 다른 상태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물리계를 놓고 A가 측정한 후 B가 측정한다면 B는 A가 본 것만을 볼 수 있으므로, 두 사람이 독립적으로 측정하여 결과를 비교하자면 똑같이 마련된 두 개의 물리계가 필요한데 측정을 하지 않고는 두 물리계가 똑같이 마련되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A와 B가 다른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두 개의 독립적인 물리계가 서로 다른 상태에 있었던 것이며, 같은 결과를 얻었다면 처음부터 같은 상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하나의 역학 체계는 측정하기 이전에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 역학이 뉴턴 방정식을 통해 주어진 물리계가 어떤 물리량을 주게 될지 정확히 말할 수 있다면, 양자 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의 답은 가능한 여러 개의 물리 상태가 나타날 확률만을 말 해 줄 뿐이다. 이러한 양자 역학적 설명에 따르자면 인과율도 수정되어야한다.
물리학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미래를 예측하려면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현재의 물리적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미래의 상태도 어떻게 변할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물리적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으므로 미래의 상태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고전 물리학의 결정론적 인과율은 확률론적 인과율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양자 역학도 거시적 세계에서는 결정론적 인과율을 갖게 한다. 이것은 양자 역학의 설명 방식을 바꾸어 적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입자가 많이 모여 이루어진 거시적 물질세계에서는 측정하고자 하는 물리량이 커지므로 이 큰 물리량에는 양자 역학이 말하는 여러 가지 물리 상태가 중첩되어 관측될 수밖에 없다. 즉, 고전 역학적 물리량은 양자 역학적 물리량의 평균치를 나타내고 이 평균적인 물리량은 정확히 뉴턴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양자 역학에서 보일 수 있다. 거시적 세계에서 양자 역학의 법칙이 고전 역학의 법칙을 따르는 것을 보어의 대응 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라고 부른다.
5. 맺는 말
불확정성 원리 또는 상보성 원리에 입각한 양자 역학은 사물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본다. 관측자마저 관측 대상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관측자가 관측 대상을 분리시켜 측정하는 순간 실체는 이미 교란되었고, 관측자는 자신의 관측 행위를 통해 창조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관측할 때 생기는 교란 행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 그리고 이 불확정성 원리를 일반화시켜 보편적 원리로 만든 것이 보어의 상보성 원리이다. 이 원리에 의하면 물리적 실체란 관측자가 측정을 통하여 자기가 보는 것을 창조하여 보는 것이 전부인데 교란되기 이전, 즉 관측자와 관측 대상이 분리되기 전의 실체란 무엇일까? 그것은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는 허상(虛像)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그 무엇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결코 분석을 통해 서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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