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 몸부림치다 깬 새벽녘. 소리는 지르지 않은 것 같지만 가슴은 쿵쾅댐과 동시에 답답했다. 나는 진정되지 않은 기분으로 그 새벽녘 상황을 정리하고자 애썼다. 그러다 생각의 늪에서 다시 잠든 아침녘. 나는 같은 상황에 같은 인물이 나오는 악몽을 또 꾸었다. 찢어질듯하다.
꿈=현실=실현
그리고 그 속의 나.
마성의 해에 떠오른 또 하루의 고비는 ㄱㅅㅈ과의 통화에서 힘을 얻었고 ㅂ을 통해 다시 일어났다. 이렇게 또 한번 삶을 이어간다. 사실 지구인의 3분의 1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만.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밤차를 타고 찾아간 바다의 해변가 모래 위에 위와 같은 구절을 써 놓고 피천득 선생은 죽지 않고 돌아왔다.
일관성과 스스로 하는 가치관의 정립이 화두인 요즘 때마침 읽고있는 책에서 니체의 한 구절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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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관습에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인생관은 대개 실제로 살아 보고 경험해 본 결과를 통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여러 종교를 잘 알아보고 공부해 보고 믿어 본 후에, 그 중에서 가장 알맞은 종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친구를 따라 우연히 교회에 가게 되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말은 곧 내가 독일인 것은 내가 여러 나라 중에서 독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독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독일인이 된 것과 같다. 그것은 내가 골라서 선택하기 이전에 이미 그렇게 선택하도록 된 것이지, 나의 신념이나 확신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포도주 생산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려서부터 포도주를 마실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포도주 애호가가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타의적 선택에 의한 삶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현실에 불만이 있다면 그것을 뒤집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오랜 인류의 관습 중 하나인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사람이 일부다처제를 반대할 경우, 그에게 일부일처제를 지탱하는 합리적 근거가 어디서 나왔고 그것을 지지하는 열정이 어떠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따져 보라.
그러면 자신의 현재 생활은 신념이나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무 근거도 없는 원칙에 익숙해진 채 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 인생론 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 (이동진 옮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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