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Eul Moon
#아파트
도시에서도 단독주택을 짓는 이가 늘고 있다. 비결은 일본에서 먼저 인기를 끈, 협소주택이란 용어로 불리는 소형주택이다. 좁게 짓고 층고를 올려 높게 짓지만, 전체적인 면적은 기존보다 검소하게 만들어 비용 부담을 줄인다. 덕분에 땅값 비싼 도시에서도 아파트와 비슷한 가격으로 단독주택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단독주택을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 혹자가 말하길, 아파트 화장실 변기에 앉아 어느날 생각을 했는데 자기 바로 위에서도 누군가 볼일을 보고 있고 아래에서도 볼일을 본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단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크게 유별나지 않다. 주거 양식에서의 양적 추구에서 이제 질적 추구의 시대가 왔다. 게다가 주거라는 본질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투자의 목적이 아니라.
그리고 본디 숲 안에 있으면 숲을 못보는 법이다. 아파트 사는 이라면 당장 베란다창을 열고 맞은편 동을 바라보라. 구멍 틈틈이 들어찬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이웃 간이 시각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분리되고 단절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이다. 두꺼워 봐야 불과 수십센티미터 콘크리트 넘어에 생판 모르는 이의 농밀한 사생활이 펼쳐지고 있다. 돌이켜 말하면 나의 은밀하고픈 사생활이 보호 받는 것도 이 몇뼘자리 콘크리트 덕분일 뿐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얕다.
#도시
생활 반경의 인지를 조금 더 확장시켜보자. 아파트가 내밀한 물리적 거리에 비해 무관심의 공간이라면 도시는 철저히 익명의 공간이다. 상상해보라.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곳에서 내가 어딜 가거나 무슨 일을 하면 이는 굉장히 주목받는 일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작은 사회 내에서는 행위의 주체가 적나라한 까닭이다. 물론 도시도 작게 떼어내어 보면 동네(혹은 아파트 동)라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하지만 압축된 물리적 거리와 아파트의 집약적인 수용으로 인해 5분 정도만 집을 벗어나도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이 된다.
이 익명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보통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개인주의나 사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득됨이 분명하다. 실제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 지인은 TV나 영화 따위에서 종종나오는, 시골에 남아있는 휴머니즘이나 공동체를 조명하는 장면들을 보며 약간은 몸서리 치기도 한다. 그의 생각은 '시골에서는 살고 싶으나 가정의 희노애락까지 공유해야하는 문화'는 싫단다. 많은 도시인들이 공감 할 것 같다. 관심과 참견은 때론 동일어니까.
하지만 혼자 살 수 없는 게 또 인간이다. 그래서 도시민들도 능동적인 인간관계를 구축한다. 물론 출신 학교나 직장에 따른 인맥이 많긴 할것이다. 하지만 작은 집단인 시골의 경우 태어나거나 이주함과 동시에 모든 기본적인 인간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도시는 내가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관계망의 크기는 수배에서 수십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친구는 만들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 나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도시로 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골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위해 도시로 갔다가 이후 또 다른 도시로 왔다. 그 뜻은 기반 인맥을 한 차례 잃고 다시 절로 생기는 집단 인맥을 한 번 더 잃으며 지금의 도시로 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성격 탓인지 인간 관계가 넓지는 않다. 아니, 만나는 사람은 많지만 지속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항상 현재의 인간 관계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다. 크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사실 꽤나 정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집안에 앉아 조용한 날을 보내던 어느날 가끔씩 마음 한편에서 스며나오는 본질적인 외로움은 해소할 길이 없다.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터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훌륭한 용어도 있지 않은가.
아주 간혹 마주치는 옆집에 인사를 건네보아도 데면데면할 뿐이다. 하지만 사실 이 상황이 나의 탓도 그의 탓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철저히 익명성을 좋아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그저 간만에 낮과 밤이 바뀌었더니 잡념이 머리를 맴돈다. 하지만 게워내고나면 그 어느때보다 맑아지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운동이라도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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