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 황태, 명태와 견주는 생태 말고 생태적 시각, 생태주의 등 용어 속 생태란 무엇일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단순히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 생태라는 용어의 쓰임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로서의 시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쉽게 이해하려면 ‘환경’과 비교해보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지나친 개발중심주의로 파괴된 환경을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며 환경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사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이 시각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었으니 어쨌든 인간중심적이었다는 부분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고등 생명으로서 인간이 존재하고, 그 인간을 둘러싼 나머지를 환경으로 치부했습니다. 이런 시각과 사고 아래에서는 아무리 환경을 생각한들 이 환경을 인간이 통제하려 들 것이며, 비록 보전할지언정 인간을 위한 이용의 대상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었지요. 게다가 '환경'이라는 용어에는 인간 이외 엄연히 존재하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생태적 시각은 인간도 자연의 한 일부로 여깁니다. 탈인간중심적 사고지요.
매우 단순하게 이해하자면, 그간 '인간'만 생각하고 살았다면 이제 '인간+식물+동물' 모두 생각하자 정도가 되겠습니다. 절대 '식물+동물'만 생각하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는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인간은 홀로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기적’이라는 말과도 의미가 연결되는데, 생태계는 우리의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생명들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런 조물주의 자연 균형에 인간이 칼을 대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인간의 생명줄에 칼을 대는 것과 같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고 역시 인간중심적이기는 합니다. 과정이야 비슷해도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원으로서 자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장 농익은 생태적 시각은 동물권이나 생명권에 대한 개념 자체있습니다. 인간의 생존이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이유만으로도 고귀하므로 결코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인간은 암세포나 기생충마냥 해악이므로 자연계에서 사라져야 한다거나, 인간 이외의 생명이나 지구 순환계를 위해서 인간을 배제하는 에코파시즘과 인간혐오주의로 치달아서는 안 됩니다. 몇몇 토건세력들이 국내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을 에코파시즘으로 매도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극단적인 사례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첨부한 그림은 ego와 eco를 도식화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 나 자신(ego)의 인식은 필수 불가결합니다. 나를 인식한다는 건 나와 여타의 것을 구분 짓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의식화 하지 않으면 좌측의 도식대로만 살아가게 됩니다. 먹이사슬에 관한 설명에서 많이 보던 피라미드 형태지요. 물론 동물 본성이자 자연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논리이기는 합니만, 한번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이 도식에서는 힘센 남성이 힘이 약한 여성의 상위에 존재합니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신가요? 비록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좌측 도식과 같은 상태로 살아왔겠지만, 남녀평등 사상은 이제 자연스레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차이는 존재할지언정 우위를 두지는 않고 있지요.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고 힘의 불균형이 심각해진 지금 세상은 약육강식으로 대변되는 본성으로만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겐 '지성'이 주어진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 지성을 이용해 우리는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제겐 인간에게 주어진 시험이자 사명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탈락한다면 인간도 더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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