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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영화 <위플래쉬>의 씁쓸함

간만에 영화를 봤다. 화제의 영화 <위플래쉬>(Whiplash)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 속에서 이 영화는 "올해의 영화가 벌써 나왔다."라고 평가할 만큼 수많은 호평과 함께 관객 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과연 '올해의 영화'라 칭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영화는 압도적이었고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줬다.


영화는 관객과 호흡하는 내내 무겁다. 학대(?)에 가까운 장면이 뿜어내는 인간의 광기와 이로 인해 탄생하는 각종 사고들이 빚은 어두운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무거운 영화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럼에도 이 영화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자 내게 씁쓸함과 더불어 찝찝함을 남겨준 문제의 부분은 엔딩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며 남는 이 불편한 여운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하 스포 매우 주의)


사진=다음 영화정보

그것은 플렛처 교수(J.K 시몬스 분)의 강경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교육법에 있었다. 주인공과 동등한 입지와 비중으로 100여 분 내내 관객들을 사로잡는 플렛처 교수는 때론 제자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자신의 스파르타식 폭군 교육을 끝까지 고집한다. 폭언이나 폭력은 예사고 때론 일부 제자들을 다른 천재적인 제자를 키워내기 위한 소모품으로 철저히 이용하기도 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다."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채찍질로 제자들을 대한다. 시련과 동기부여를 해 주어야 천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만족은 가장 쓸데 없는 단어이며 인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제자들은 그의 교육법 아래 분노하고 경쟁당하여 때론 죽음으로 낙오하기도 하고 또 때론 분노를 노력과 예술혼으로 승화시키며 조금씩 전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는 사이 누구나 만신창이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플렛처의 교육법 자체는 얼굴을 찌푸릴 지언정 찝찝하거나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겨주진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결과론적으로만 보았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할 때다. 극장의 암흑 속에서 영화가 클라이막스와 엔딩으로 치달을 무렵 나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플렛처는 주인공인 앤드류에게 복수하지만, 앤드류는 쓰러지는 가 싶더니 다시 일어나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런 앤드류의 증명이 좁은 시각에서는 곧 플렛처의 악랄한 교육법의 증명도 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앤드류의 뜻밖의 복수속에서 드러난 천재의 탄생에서 플렛처가 미소짓는 이유다. 물론 그가 한 모든 악랄한 행위와 복수 따위가 이 '천재를 길러낸다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서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플렛처의 행위는 그 안에서 이런 큰 그림으로 충분히 정당화 된다. 누군가는 이 속에서 우리나라 구세대 선생들이 "다 널 위한 것이다.", "교육을 위해서다."라며 비인격적인 모독과 폭력을 정당화 한 사실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내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늘어놓자면 나도 이와 비슷한 논쟁을 교수와 한 적이 있다. 분명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을 터인데, 때는 1학년 여름 무렵. 내가 수업을 듣던 예술학과 교수는 "만족을 하면 발전이 없다."며 만족하지 말 것을 내게 주문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만족 속에 들어 있는 행복이 내 인생의 목표"라며 반박했다. 대체 무엇을 위한 발전이란 말인가? 평소 인생의 목표는 특정한 어느 지점이 아니라 연속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던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진=다음 영화정보


다시 영화로 돌아가 무엇을 위한 천재인가? 그들의 정당화는 바로 인류의 전반적인 발전과 문화 수준의 향상에 기인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플렛처와 주인공 앤드류가 자주 주고 받는 대표적인 천재인 찰리 파커와 루이 암스트롱까지. 인류는 분명 소수의 천재들로 인해 약진하고 지금도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산물을 향유하면서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천재들은 과연 행복했을까?'하는 문제와 만약 플렛처와 같은 교수법이 계속된다면 '그런 천재를 만들기 위해 희생당하거나 좌절한 사람들의 행복은 어쩔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초점을 개인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인류를 하나의 덩어리로 볼 것인가. 분명 세상을 바꾸는 건 대다수의 범인이 아니라 일부 천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건 대다수의 범인이다. 개인이 사라진 사회는 폭군으로 인한 억압과 파시즘 따위가 남을 뿐이다. 우리는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 이 영화의 제목 Whiplash는 채찍이나 자극을 뜻한다.

* 이 영화에 단순한 압권과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꽤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독의 연출이 평면적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어쨋든 꽤나 위험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