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러왔으나 임신은 아니었다. 나는 남자니까. 결국, 인근 보건소에 들러 체지방 검사를 했다. 결과는 복부비만에 하체 허약. 직장 선배들은 결과를 보며 놀려댔고 나는 그들에게 믿기 힘든 진실을 외쳤다. “원래는 이러지 않았다고요!” 직장생활 불과 100여 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날을 되짚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러오는 배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놀려대던 선배들도 “나도 한 번 검사해볼까?”라며 웃음 뒤에 숨겨진 고민을 내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길지 않은 서너 달의 시간 동안 대체 내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날을 떠올려보았다. 몸의 변화에는 분명 생활의 변화가 선행되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고향에서 상경해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먼저 활동량이 줄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날이 늘었으며, 현장을 가도 오가며 차 안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출퇴근도 버스를 탔다. 실제 나를 상담해준 보건소 직원도 “먹는 양은 그대로인데 활동량이 줄어든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내 배를 진단했다. 하체 허약이라는 부분도 설명이 됐다. 생각해보니 사무실을 지켜야 하는 직장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배를 가지기 쉬운듯하다. 일단 내가 그랬듯 절대적인 운동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게으르다 질타할 수 있겠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 일과를 마친 후 또다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하지만 내 생활에는 이렇게 줄어든 활동량 외에 더 큰 변화가 있었다. 그건 바로 먹는 문제였다.
위험한 밥상, 외식
사실 끼니는 오히려 줄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다가 아침은 거르게 됐다. 그렇다고 점심이나 저녁을 두 그릇씩 먹은 것도 아닌데, 왜 배가 나오는 걸까? 여기에는 나도 그리고 상담해준 보건소 직원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이, 하루에 몇 번 먹느냐의 문제가 아닌 바로 ‘무엇을 먹느냐’는 문제였다.
짜고 기름지며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되는 ‘외식’이 문제였다.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대부분 저녁을 사 먹었다. 밥 해먹기 까다로운 조건 속에 살기도 했고, 혼자 사니 해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더 간편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외식을 자주 한다. 밥하기 싫은 날이나 특별한 날, 가족끼리 집 밖으로 나가 먹는 식사뿐만이 아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을 회사 근처에서 사 먹곤 하는데 이도 곧 외식이다. 저녁은 ‘칼퇴근’해서 집에서 먹더라도 하루 한 번은 꼭 외식하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야근에 회식에 바깥에서 친구라도 만날라치면 끼니의 절반은 외식으로 때우기 십상이다. 실제 2010년 하루 1회 이상 외식률 통계를 보면 전체인구의 4분의 1가량이 하루 한 끼 이상을 외식으로 해결하고 있었으며 19세에서 29세까지는 무려 42퍼센트, 30에서 49세는 29퍼센트 가량이 하루 한 끼 이상을 집 밖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요리할 시간이 부족해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즐겨 먹는다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예가 하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모건 스펄록은 촬영이 진행되는 한 달 내내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맥도날드만 먹으며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결과는 한 달 만에 몸무게가 11.1킬로그램 증가했고 우울증, 성 기능 장애, 간 질환 등을 겪었으며 불어난 몸무게를 다시 줄이는데 14개월을 소요해야 했다.
이 영화는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인지한 부분은 성공적이지만, 문제는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이 극장을 나오며 맥도날드로 달려갔다는 점이다. 우선 나조차도 그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패스트푸드가 자극적인 맛과 열량 그리고 간편함으로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외식을 통해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당신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을까? 답은 바로 커피다. 우리나라의 커피소비량은 2011년 한 해 기준 성인 1인당 338잔으로 거의 하루에 한 잔은 마시는 셈이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인의 당분 섭취 경로를 조사한 결과, 커피가 무려 33퍼센트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섭취하는 당분 중 3분의 1이 커피에 탄 설탕이라는 의미다. 커피에 이어 주스 등 음료 21퍼센트, 과자·빵 16퍼센트, 콜라·사이다 등 탄산음료 14퍼센트, 유제품 8퍼센트가 뒤를 이었다. 18세까지는 품목에 커피가 들어가지 않는데도 전 연령대 평균 당분 섭취 1위 식품을 커피가 차지한 것이므로, 실제 성인들이 커피에서 당분을 섭취하는 비중은 더 높다. 게다가 주스와 탄산음료 등을 합하면 무려 68퍼센트로 대부분의 당분을 마실 것에서 섭취하는 셈이다.
문제는 ‘비어있는 열량(empty calorie)’이다. 비어있는 열량은 영양소는 거의 함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열량만 높은, 이를테면 탄산음료나 달콤한 과자 등에 들어있는 당류를 일컫는다. 흔히 정크 푸드(junk food)라고 부르는 이러한 음식들은 몸에 필요한 무기물이나 비타민 등의 영양소는 거의 없으며, 당류만이 순수한 에너지만 남은 형태로 공급된다.
이 비어있는 열량 문제는 나처럼 가난한 자취생에게서 더 도드라진다. 과일이나 채소를 충분히 살 정도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설탕과 전분, 기름과 가공식품을 많이 사 먹기 때문이다. 이런 식품들은 에너지는 높지만 가격은 싸다. 실제 2011년 아동·청소년의 비만도 조사결과를 보면 저소득층 아이들의 비만도는 11.5퍼센트로 잘사는 집 아이들의 6.4퍼센트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못사는 사람들이 더 뚱뚱한 세상이 온 것이다.
나는 억울하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내 배를 만들어 놓은 셈인데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 배를 다시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선 활동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으로 왕복 8킬로미터 정도의 출퇴근길을 최대한 걸어 다녔다. 비어있는 열량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노력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신선한 과일 사진으로 위장한 주스가 내 몸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억울하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을 뿐인데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지금보다 더 살이 찐다면, 사람들은 마치 나를 게으름뱅이에 음식 절제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뚱뚱한 사람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난한 아이들이 더 뚱뚱하다는 사실은 이제 더는 비만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세상이 이러한데, 과연 당신의 배는 안녕하신지? 도통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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