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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보물을 찾았다, 그 이름 빈 병!

어린 시절 빈 병을 모아 동네 슈퍼에서 과자로 바꾸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빈 병의 가격은 30~40원가량. 서너 개를 모아가면 과자 하나를 사 먹을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 쏠쏠한 재미에 친구들과 빈 병을 찾으러 다닌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레 그만두었다. 과자값은 해마다 올랐지만 빈 병의 가격은 그대로였고, 한 아름의 빈 병으로도 더는 과자 하나 사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미를 잃은 ‘빈용기보증금제도’

어린 내가 단순히 병의 가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빈 병 보증금. 사실 1985년 처음 빈용기보증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출하된 소주병, 맥주병을 재사용하면 원가절감을 할 수 있어 기업도 국가도 이를 반겼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환경적인 측면이 더 주목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3년부터는 환경부가 전담하게 됐다. 

이렇게 환경부의 정책이 된 것만도 어느덧 10년이지만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유명무실한 보증금의 크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격에 차이가 없다 보니, 가정에서 빈 병을 모아뒀다가 수집소에서 환불받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환불받는 보증금이 너무 적은 것이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국내에서는 맥주병 보증금(330~500밀리리터 기준)이 불과 50원인데 반해 다른 국가들은 독일 149원, 핀란드 186원, 노르웨이 180원, 캐나다 115원으로 훨씬 더 현실적인 금액이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한 빈 병은 빈 병 수집소를 통하지 않더라도 분리배출을 통해 회수되기는 한다. 하지만 파손율이 높다. 실제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빈 병 회수율은 98.5퍼센트지만 파손율이 높고 오염된 병이 많아 재사용률은 80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왜 유리병이어야 하는가

유리병의 가장 큰 장점은 재활용은 물론이고 ‘재사용’까지 가능하다는 점이다. 재활용과 재사용, 얼핏 보면 비슷한 말 같지만 그 차이는 크다. 재활용의 경우 물질을 분해하거나 녹여 새로이 제품을 만들어야 하지만 재사용은 살균·세척 등 기본적인 작업만 거치면 새 제품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캔, 플라스틱, 종이 등은 재활용은 가능하나 재사용은 불가능한 것들이다.

유리병 중에서도 가장 재사용이 편하고 사용량이 많은 것은 맥주와 소주병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소비하는 맥주는 2011년 기준 173만8759킬로리터로 34억7752만 병에 달한다. 성인 한 명당 89병씩 마신 셈이다. 소주도 무려 33억2000만 병. 이 때문에 주류 생산 업체들은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몇 해 전부터 병 규격을 통일하고 있다. 규격을 통일하면 업체별 병 분류과정에서 일어날 파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빈 병 재사용률을 1퍼센트 포인트만 증가시켜도 무려 1만11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유리병은 여타 재질의 용기에 비해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위험도 거의 없다.

환경적인 측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유리병은 가격과 맛 그 어느 면에서도 유리하다. 먼저 가격을 보면 맥주를 기준으로 같은 용량의 캔 용기 맥주보다 병에 든 것이 500원 이상이나 싸다. 캔 맥주가 2000원이라면 병맥주는 1500원가량. 모두 재사용이 가능한 병 덕분이다. 게다가 병에 든 것은 페트(PET)에 든 것보다 맛도 좋다. 이유는 페트에 비해 유리는 구조가 굉장히 치밀해 탄산이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페트는 시간이 지나거나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탄산이 일부 빠져나간다. 문자 그대로 ‘김이 새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안다면 우리의 유리병 선택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빈 병이여 돌아오라

우리나라는 병에 이물질이 들어 있거나 회수 과정에서 파손되는 비율이 높아 재사용이 평균 7회 정도에 그친다. 독일 40회, 핀란드 30회, 일본 24회 등 선진국의 재사용률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재사용률을 높일 수 있을까? 앞서 지적한 대로 빈 병 보증금을 현실적으로 올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어차피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이라면 실제 환불을 유도할 정도의 현실적인 금액이어야 옳다. 환불 가능한 수집소가 적은 것도 문제. 빈 병은 원래 동네 슈퍼에서도 회수해야 하나 관리가 힘들어 실제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최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빈병보증금환불센터가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그 수가 매우 적을뿐더러 현재의 보증금으로는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

병 자체의 내구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선진국은 빈 병의 유통과정 비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게는 경량화하고 강도는 높인 병을 개발해 유통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빈 병의 재사용률을 높이려면 이런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병의 도입이 시급하다.”며 새로운 병의 개발에 주목했다. 수거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발생, 병 파손 등을 모두 줄이는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소비자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 담배꽁초 등 이물질이 들어가면 그 병은 파쇄할 수밖에 없기에 깨끗이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가능한 분리배출보다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직접 수집소에 가져가면 파손을 줄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인조보석인 유리는 한때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는 유리병이다. 비록 보석은 아니지만 유리병은 끊임없이 소비하는 우리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주목해야 할 현시대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빈 병이여, 부디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