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갔다 온 여자, 필리핀 갔다온 남자와는 결혼 안한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는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로, 필리핀으로 여행가는 많은 한국 남성들이 성매매를 경험한다는 사실과 호주에 다녀 온 많은 여성이 남성과 장기간 동거를 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말로 해석된다. 특히 호주의 경우 내가 저 우스갯소리를 접한지 얼마되지 않아 많은 '전문'여성들이 성매매를 위해 호주로 떠난다는 기사가 보도 되었다. 때문에 이제는 다른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는 '동거'에 있다. 나는 둘 중 호주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필리핀에 대해서는 비록 들은 바는 있으나 현지에서 본 것은 아니기에 일단 뒤로 한 채.
1995년 7월 호주와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을 한 이래 수많은 국내 청년들이 호주를 다녀왔다. 특히 초기에는 있던 인원제한이 없어져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기준 약 4만 4천여명의 청년들이 11개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리고 그 중 호주는 무려 3만여명이나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찾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도 그 무리의 하나가 되어 호주를 다녀왔다. 한창의 나이인 청춘남녀. 게다가 집을 떠난 타국생활의 외로움까지. 그곳에선 자연스레 수많은 커플이 탄생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동고동락뿐 아니라 '동거동락'까지 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동거를 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처럼 여기기까지 한다. 실제 그곳에 도착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동거를 하지 않는 커플은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한국인은 아니었고 일본인 커플이었는데 나는 왜 그들이 같이 살지 않는지 도통 이해가 안되었다.
이런 청춘남녀들은 비자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동거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매우 비정상적인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타국에선 쉽게 동거했던 사람들도 한국에선 그러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호주는 동거문화가 자연스럽기 때문일까? 로마에 왔기에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것일까? 그런데 사실 그것이 로마의 법(호주는 동거문화가 자연스럽다)이라는 근거는 대부분 접한 적이 없다. 실제 동거문화가 정착해 있다손 하더라도 말이다.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원인을 몇가지 생각해 보자. 먼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원래 혼전경험이나 동거에 긍정적일 수 있다. 또한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럽다는 것과 다른 여행자들도 모두 동거를 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전 처음 부모의 틀을 떠난 젊은이들이 일종의 아노미상태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일부 스무살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처음 만끽하는 자유에 방종의 생활을 하는것 처럼.
자주 가던 20대를 위한 커뮤니티에서 요사이 섹스파트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적이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옹호의 발언을 하였지만 대부분은 손사래를 치며 역겨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성의식의 기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그들이 즐겨보는 미드(미국드라마) 속 섹스파트너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꿈꾸기도 한다.
이럴진대 결국 성의식은 개인의 기준이 아니라 단지 사회의 기준일지도 모른다. 즉 지금 서 있는 사회나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나의 성의식이 변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이중적 혹은 다중적인 성의식를 가진다는 것인데, 과연 누가 타인의 성의식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왈가왈부 할 수 있을까? 남이 동거를 하든 섹스파트너를 가지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선 존중해야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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