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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광주의 특별한 버스를 타다

광주에는 특별한 시내버스가 있다. 518번과 1187번이 그것이다. 사실 겉보기엔 두 버스 모두 일반 버스와 다르지 않다. 아마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이 두 버스의 특별함은 번호와 노선에 있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5·18자유공원, 5·18기념문화센터, 금남로, 전남대, 국립5·18민주묘지 등을 지나는 버스 ‘518’번과 얼마 전 새롭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1187미터의 무등산으로 향하는 버스 ‘1187’번은 10여 년 째 광주를 상징하며 하루도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이에 어느 따사로운 봄날 나는 특별한 두 버스에 올랐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막상 광주에 도착해도 518번 버스는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배차간격이 30여 분으로 꽤 길기 때문이다. 518번은 광주 도심에 위치한 상무지구에서 출발해 약 60개의 정류장을 지난 뒤, 도심의 북동쪽 외곽에 있는 영락공원묘지를 기점으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출발지인 상무지구는 옛 상무대(육군 전투병과 학교)가 있던 자리를 개발해 만든 신도심이다. 나는 먼저 상무지구에 위치한 5·18자유공원을 찾았다.

5·18자유공원에는 옛 상무대의 영창과 법정이 재현돼 있다. 신도심 개발로 사라진 역사적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특히 군사법정은 당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급조된 것으로, 여기에서 421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비공개 약식재판을 받았다. 이미 짜여있던 각본은 이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등 실형을 선고했다. 속전속결로 처리해 이 상황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려는 군부의 속셈이었다.

다시 버스에 오르면, 518번은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을 들른다. 이곳은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으로 대중들에게 더욱 각인되어 있다. 1980년 5월 21일 시민들과 군인들이 대치하던 장면, 울려 퍼지던 애국가, 그리고 발포. 영화는 두 세력을 더욱 극명하게 대조하기 위해 연출을 가미했다. 실제로도 이 사건이 시대의 비극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나처럼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마치 일제강점기처럼 먼 옛날의 이야기 같았다. 한 어르신이 간이의자에 앉아 금남로를 응시하고 계셨다. 분명 그의 기억에 이곳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의 장소리라. 노인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1980년 5월 26일, 최후의 교전을 하루 앞둔 전남도청.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은 아직 앳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금남로를 응시하던 어르신의 기억 속에서 이들은 살아있었다.


망자와 산자를 잇는 버스

5·18민주화운동의 촉발지 전남대 정문에 들른 후 다시 버스를 탔다. 여기서 20분을 더 달리면 518번 버스는 시가지를 벗어나 도동고개를 넘어 한적한 길로 진입한다. 마지막 목적지 민주묘지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1980년 5월 29일, 126명의 5·18관련 사망자가 망월동 묘역에 묻히기 위해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 지났던 길이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도로 양 옆으로 노란 개나리가 만개해 있었다. 개나리는 후세의 사람들이 심은 것일 터, 망자에게 가는 꽃길이 한편으론 다정하게 느껴졌다.

시내의 여타 5·18사적지들은 다른 번호의 버스를 통해서도 갈 수 있지만, 묘역으로 가는 버스는 518번이 유일하다. 시가지를 벗어날 당시 9명이던 버스의 승객은 금세 4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 중에도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5월이 찾아오면 이 버스도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5월의 광주는 제사지내지 않는 집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국립5·18민주묘지 다음 정거장인 공원묘지 정거장에서 내렸다. 이곳은 5·18구묘지로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5·18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던 곳이다. 지금 유골은 모두 새로운 묘지로 옮겨가고 가묘 형태로만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묘지로 오르는 길바닥에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굉장히 의아한 풍경인데 사연은 이렇다.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호남지역을 방문했지만, 광주에는 가지 못하고 결국 담양의 어느 마을에서 민박했다. 그 후 누군가가 기념으로 이 비석을 세웠는데, 1989년 비석을 발견한 광주시민들이 원래의 장소에서 뽑아와 이곳 묘역 입구에 박아놓은 것이다. 묘역을 찾는 사람들이 한 번씩 침을 뱉고 밟고 가라는 의미다.

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걸어 내려갔다. 10분이면 가는 지척이다. 평일 봄날, 방문객 없이 텅 빈 묘지 내에는 확성기에서 나오는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앞서 소개한 윤상원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국립5·18민주묘지에는 총 10개의 묘역이 있다. 이는 돌아가신 순서와 장소, 사건 등을 고려하여 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쪽의 8묘역과 왼편의 9묘역은 비어 있었다. 아직 살아계신 분들을 위한 자리라고 했다. 그렇다, 5·18이 있었던 1980년은 불과 30여 년 전. 이 아픈 역사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을 되새기게 된다.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묘역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아이들은 간결하게 참배와 분향을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을 보면서 최근 인터넷상에서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5·18의 왜곡을 떠올렸다. 5·18기념재단 진실조사실 김점옥 씨는 “이는 특정 사이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고 전반적인 문제로,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왜곡을 했으나 지금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학교에서 정확한 가르침을 받지 않은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왜곡을 받아들이게 될 것을 우려했다. 올바른 역사 인식에는 망자와 산자의 끊임없는 교감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도 518번 버스는 그 의미가 크다.


무등산의 품으로 ‘힐링’버스

1187번은 광주 시내 광천동에서 무등산 원효사까지 운행하는 버스로,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한참 전부터 무등산의 높이를 그 번호로 달고 운행했다. 버스에 오르니 나보다 먼저 타고 있던 10명의 승객 중 9명이 등산객이었다. 그야말로 목적이 확실한 버스다.

고속버스터미널과 광주역, 금남로를 거쳐 도심의 동쪽 끝에 있는 장원초교를 지나면 그곳에서부터 꼬불꼬불 고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산길이 시작된다. 이는 장원봉 자락의 한 능선을 넘는 길로, 오르는 동안 차창 밖으로 광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개를 넘으면 다시 버스는 내리막길을 달린다. 이때부터 펼쳐지는 무등산의 포근한 산자락의 아름다움은, 두 발이 아닌 버스를 타고 이 길을 지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남도 특유의 완연함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덧 원효사 종점이다. 

사실 당시 518번 노선에서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버린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게다가 518번 버스를 타며 얻은 역사적 중압감에 녹초가 되어 있던 터, 어쩌면 약속된 두 버스를 모두 소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1187번을 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무등산자락에 진입하니 이 모든 것들을 자연스레 잊게 됐다.

버스가 내려준 등산로 초입에서 나는 저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무등산도 나를 바라본다.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980년 5월 그때도 1187미터의 무등산은 광주를 굽어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후 이 어머니의 산은 상처받은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그녀의 품으로 안아주었을 것이다. 십여 년 전 두 버스 518번과 1187번은 동시에 탄생했다. 518번이 역사의 버스라면, 1187번은 치유의 버스였다. 둘은 따로 떨어질 수 없었다.

광주 땅에서 바라본 5·18의 역사는 더욱 무겁다. 하지만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무게의 강요는 공감의 형성에 방해물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답사를 도와준 광주환경연합 박병인 활동가가 말했다. “젊은 세대를 위해서도, 이제 5·18은 축제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의 산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변화가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다가올 변화 속에서도 특별한 두 버스는 역사와 치유가 공존하는 광주를 하루도 쉼 없이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