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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자원과 쓰레기, 경계에 선 라면봉지

몇 해 전 자원순환사회연대는 한밤중 트럭을 타고 시내를 돌며 쓰레기를 수집했다. 종량제봉투 내 재활용가능자원 혼입률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결과는 놀라웠다. 배출된 종량제봉투에는 종이류, 병류, 캔류, 플라스틱류 등 우선재활용가능자원만 45~50퍼센트 가까이 혼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플라스틱류 중 라면봉지, 과자봉지, 각종 식음료의 비닐포장재 등 비닐·필름류의 혼입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오늘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당장 내가 사는 동네에 내놓인 종량제봉투만 들여다보아도 라면봉지, 과자봉지 등의 혼입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리배출 가능한 라면봉지

라면봉지, 과자봉지 등의 필름류 포장재는 이미 2004년부터 분리배출대상이었다. 믿기 어렵다면 라면봉지의 뒷면을 보라. 분리배출을 뜻하는 순환 화살표가 삼각형 모양으로 떡하니 박혀있을 것이다.

물론 알고 계셨던 분도 많을 것이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다른 곳에 비해 혼입률이 낮은 편이었다. 2010년 자원순환사회연대의 혼입률 조사결과를 보면, 아파트 단지는 33.6퍼센트로 재활용가능자원을 가장 적게 버렸고 주상복합(46.0퍼센트)이나 단독주택(45.7퍼센트)은 혼입률이 높았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비닐류도 체계적으로 분리배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혼입이 적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단독주택의 경우 자발적인 분리배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시민들의 비닐류 분리배출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가 부족해 혼입률이 높은 것으로 보였다.

서울시 일반주택에서 발생하는 비닐류 양은 연간 8만 톤(2010년 기준)에 달하지만, 이 중 재활용률은 27퍼센트에 불과하다. 종량제봉투 등으로 배출돼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경우가 5만8000톤으로 무려 73퍼센트다. 공동주택, 사업장 발생량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만 연간 약 22만 톤이 발생한다. 이런 비닐류를 일반쓰레기와 함께 소각처리하면, 염소가스나 다이옥신 등의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더불어 비닐류를 분리배출하면 매립쓰레기도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매립되는 쓰레기의 21퍼센트가 재활용 가능한 품목으로 나타났다. 또한, 매립쓰레기의 36.3퍼센트는 고형연료로 생산이 가능한 가연성 폐기물이어서, 이를 제대로 분리할 경우 현재의 매립쓰레기를 63.7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거해도 활용 힘든 비닐·필름류

하지만 아직은 한계가 많다. 먼저 처리 시설 자체가 없는 지자체는 수거를 할 수 없다. 또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도 수거 자체가 번거롭거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기대되지 않아 수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잘해도 종종 수거를 거부당하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한 지자체는 관내 아파트단지에 비닐류를 분리배출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 물의를 일으켰다.

더 큰 문제는 재활용 제품의 상품성과 경제성이다. 플라스틱에 속하는 비닐류는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폴리에틸렌(PE: 저밀도 폴리에틸렌은 LDPE, 고밀도 폴리에틸렌은 HDPE)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단일재질은 재활용이 용이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혼합배출 되기 때문에 선별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생산 가능한 제품도 대부분 배수로통, 빗물받이 등으로 부가가치가 낮다. 특히 라면봉지와 과자봉지 등 필름류는 나일론, 폴리에스터, 폴리프로필렌 등의 필름을 3~4중으로 겹쳐서 만든 복합재질이라 부가가치가 높은 원료수지 등으로 회수하기가 어려워 고형연료 제작을 통한 열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PVC가 많이 포함된 필름류는 염소성분 탓으로 고형연료사용 허용기준을 초과해,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회수한 필름류 자원을 소각이나 매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결국, 재활용으로 생산된 제품의 가치가 그 과정에 드는 비용이나 에너지소비에 못 미처, 필름류 재활용은 진정한 재활용이 아니라 ‘처리비용을 지불하는 일종의 처리’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계에 선 라면봉지를 구하라

이렇듯 라면봉지를 비롯한 포장재 비닐류의 재활용에 관한 논란은 무수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니, 비닐류 재활용이 최대한 효용성을 가지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사용자의 처지에서 이런 비닐류를 최대한 적게 쓰고 깨끗한 상태로 분리배출 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지자체는 수거와 선별이 더욱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여, 애써 수거한 재활용자원을 다시 소각·매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관련업계와 함께 재활용 제품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처리기술을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시민과 정부, 관련업계의 노력만이 현재 경계에 서있는 라면봉지를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