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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일상

20100610 JW's overture for grade D

by 막둥씨 2010. 6. 11.

'D 학점을 위한 ㅈㅇ의 피아노 서곡(JW's overture for grade D) '을 들은 뒤 그 기대에 부응해 시험을 역시나 망쳤다. 뭐 사실 공부도 흥이 나질 않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자업자득인 셈이다. 초등학교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 3년을 주입식 의무교육을 받았다면, 스스로 선택해서 온 대학에서는 흥미가 느껴지는 진정한 공부와 앎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맛있는 저녁과 차 한 잔의 여유. 오늘 느낀거지만 둘 보다는 셋이 더 즐거운 것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나른하다. 오늘부터 주말까지는 푹 쉬고 싶다. 아무것도 한건 없지만...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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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 문학은 정신이 죽어버린 중국인을 다시 살리려고 시작해서 죽은 중국인을 되살린 소설 <기사>로 끝맺었다.

<기사>란 제목은 그가 처음에 세운 뜻을 이뤄 끝마무릴 잘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따져보면 노신은 <기사>를 쓰면서 초지관철의 가능성을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초지관철의 가망이 없다는 걸 밝힌 셈이다.

주인공 장자가 초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비바람에 맞아 뼈만 남은 해골 하날 봤다. "부모 처자가 있는 사람이 이런 곳에서 죽은 건 정말 슬프고 가엾다."고 사명대신한테 빌어 해골을 되살렸다.

해골은 되살아나자마자 옷과 보따리가 없어진 걸 알고, 장자가 보따릴 훔쳤다고 여겨 "보따리 내놓아라." 한다. 장자는 "제기랄! 무식하기 짝 없는 작자야. 너 같은 놈 처음 봤다."고 나무라자 "무식한 건 누군데, 내가 물건을 잃어버린 바로 여기서 당신을 붙잡았고 돌려 달라는 게 당연하지 않소."라고 되살아난 해골이 반박했다.

장자가 당황해서 "잘 들어봐. 원래 너는 해골이었다. 그걸 내가 불쌍하게 여겨 사명대신한테 부탁해서 되살아나게 했다. 생각해 봐라. 죽은지 얼마나 오랜데, 옷 같은 게 남아 있을 수 있겠냐?"고 타일렀으나 되살아난 해골은 벌끈 활 내면서 "개자식, 놀리지 마! 돌려주지 않으면 때려 주겠다."고 한 손으로 장잘 붙잡고 주먹 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장자가 질려서 "때리진 마라. 놔라. 놓지 않으면 사명대신을 불러 다시 죽여 버리겠다."고 허덕이며 말했다.

그러나 되살아난 해골은 비웃으며 물러나서 "재미있겠네. 죽게 해다오. 그렇지 않으면 훔친 걸 다 돌려 줘야해. 그 보따리엔 동전이 쉰 두 잎과 흰 설탕 한 근 반, 대추가 두근....." 이라고 말을 되받았다.

이건 계몽자와 피계몽자의 정신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계몽자가 계몽에 성공하면 피계몽자한테 궁지로 몰리고 마침내 죽게 된다. 계몽이란 고맙긴 하되 난감한 거다. 깨우치면 가졌던 것이 없어지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갈 수 없게 된다. 이건 이제까지 길들어진 기억과 습관을 가진 피계몽자한텐 죽기보다 더 괴롭다.

장자가 사라진 다음 해골은 순경한테 "그게 없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 노릇을 못한다."고 외쳤다. 즉 지금까지 가졌던 보따릴 찾나 못 찾나가 사람 노릇을 하나 못하나의 갈림길이 된다. 이런 걸 알면, 해골이 장자한테 말한 "죽여 달라. 아니면 보따릴 몽땅 돌려 달라."는 참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걷는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걷겠다. 그게 안 되면 죽어 버린다. 원래대로의 길을 걷는 것과 죽는 것 사이앤 그다지 다를 게 없다. 하여튼 계몽은 필요 없다.  - 전우익 선생의 <사람이 뭔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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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 누가복음 10장 25절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북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사람 중에 주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과연 누가 이웃이라 할 수 있는가? 민족이나 신분 종교를 넘어 새로운 이웃을 발견하고 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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