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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2012 생명평화대행진

날씨가 급작스레 추워졌다. 11월 1일 인천으로 들어선 2012 생명평화대행진단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섭씨 2도의 매서운 바람이었다. 문정현(72세) 신부는 “제주에서는 활동가들이 밤낮 2교대로 공사를 저지중이다. 경찰들은 3교대로 이들을 막고 있다. 지금 현장이 아닌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좌불안석”이라며 오히려 제주에 있는 활동가들을 걱정했다.

강동균(56세) 강정마을회장에게 이번 생명평화대행진은 2008년, 2009년 그리고 지난 2012년 7월에 이은 무려 4번째 행진이다. “지역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목소리는 약하다. 때문에 연대가 중요하다.” 5년 5개월 지난한 싸움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행진을 하며 수많은 아픔을 목격했다. “강원 동막리 골프장 건설현장을 가보니, 지역 주민의 조상묘를 다 파헤쳐 훼손된 유골이 그대로 드러나 방치돼 있더라. 자본가나 시대의 권력층들은 부모도 없는 것들인지!” 강정마을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핏대를 세웠다. 2012 생명평화대행진으로 ‘아픔의 연대’가 형성된 까닭이다. 

이현준(44세) 씨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다. 수줍은 목소리로 “해직된 후 더 바쁘다.”고 말한 그는 평택에서부터 행진단에 합류했다. “첫날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24킬로미터를 걷고 나니 다음날 발이 안떨어졌다. 하지만 강정 주민들과 용산 어머니들을 보니 힘이 났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어 “비정규직 문제는 모든 이의 문제로 이 시대에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로 물려줘야 한다.”고 밝힌 그는 “오히려 투쟁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우리는 희생을 많이 당했지만 그만큼 위로와 사랑을 받았다. 수년을 싸워도 관심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며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줄 것을 부탁했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전재숙(70세) 씨는 “용산참사,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아직도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쌍용, 강정도 마찬가지”라며 힘주어 말했다. 또한 “지난 10월 26일 용산참사 생존자 2명이 가석방 됐다. 왜 우리가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모범수가 되어야 하나. 우리는 잘못이 없다.”며 가석방을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미국에서 온 파코 씨는 ‘강정평화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 2월 한국으로 온 후 강정마을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에 힘써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 경찰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생겼다는 그는 “한국은 너무 문제가 많은 나라다. 노동자 투쟁도 너무 많아서 불쌍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며 소감을 밝혔다. 행진을 하며 얻은 감기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각계각층의 시민과 단체들이 참여한 ‘2012 생명평화대행진’은 11월 3일 저녁 서울광장 집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0월 5일 제주를 출발한 지 30일 만의 일이다. 최종행진에는 2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행렬의 길이는 1킬로미터를 넘었다. 서울광장 집회에는 그 갑절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행진은 끝났다. 하지만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라며 전국 곳곳에서 외쳤던 이들의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바람으로만 남는 한 또 다른 이름으로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