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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물건들을 정리하며

by 막둥씨 2012. 2. 6.

이사를 했다. 일반적인 살림에 비해 단촐한 생활이었기에 상자 서너개에 모든 짐이 들어갔다. 사실 더 줄일 수도 있을것 같았다. 꼭 가져갈 필요가 없는 것은 버리고 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쉽게 그러하지 못하고 결국 옷걸이 하나까지 모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이사를 다 하고 나서 또 한 번 짐정리를 했다. 같이 정리하던 우리집 장남은 상자를 하나 가져오며 '향후 10년 동안 쓸 일 없는 것은 여기다가 버릴 것'을 명했다. 하지만 내가 보아도 분명 향후 10년간 쓸 일이 없어 보이는 물건도 그것이 아직 기능상 이상이 없으니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는 기능상 이상이 없으나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애착이 간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버려진 물건을 많이 주워왔나 보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냇가에 버려진, 외관으로는 새것 같은 전기모터를 주워와서 콘센트에 꽂았다가 불꽃과 함께 집안에 전기가 모두 나가버린 적도 있다. 낡은 것이지만 다르게 보면 사람에게 잘 길들여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릴적 친구가 새 신발을 사면 발로 밟아주는 것 처럼 새것 만이 최고는 아니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물화物化 되어가는 현대인의 숙명도 혹 이러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온전한 하나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쓸모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내 나이 이제 SM7이 되어 주위의 취업전선의 참혹한 전쟁터를 둘러 보건대 그러한 것 같다.

문득 쓸데 없는 생각이 하나 든다. 과잉생산 시대에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다면 구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놀고 먹는 일을 전담하는건 어떨까 하는. 모든 인류가 과잉생산에만 매달린다는 것 또한 낭비인 것 같다. 실제 문화와 예술은 잘 먹고 잘 노는 시대에서 꽃피우지 않았던가.

물론 내가 놀고 먹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럴껄?

사진 / 작년 여름 나의 캄보디아 생활을 함께 동고동락한 삼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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