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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8일차] ④ 보령 성주사지의 허망함과 놀라움

by 막둥씨 2012. 9. 24.

네비게이션이 말썽을 부린 것인지 아님 사용자가 말썽을 부린 것인지. 성주사지를 향해 달려온 우리는 정작 엉뚱한 곳에 도착했다. 네비게이션은 아무것도 없는, 안개만이 자욱한 산 중턱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채 이곳이 목적지라고 소리쳤다. 나는 잠시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차에서 내려 바깥 공기를 한번 들이마신 후 다시 성주사지를 검색했다. 다행이 몇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흔히 보령이라면 대부분 보령 머드축제를 떠올릴 것이다. 그 외에 이 고장에 무엇이 있냐고 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나 또한 그랬다. 성주사지를 향하면서도 이 절터가 어느 지방에 속해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이런 다소의 무지를 조금이나마 채워 볼 요량으로 보령시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그런데 문화유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것은 성주사지가 전부일 정도였다. 아무래도 바다와 가까운 도시다 보니 휴양에 중점을 두고 있는듯 했다. 머드축제도 그런 고민의 일환이리라.

 

성주사지는 놀라우면서도 허망한 곳이었다. 먼저 이곳을 방문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허망함이었다. 절터라는 것이 원래 모두 다 그런것이지만 성주사지가 주는 허망함은 유독 컸다. 게다가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때 방문객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과 산허리에는 안개까지 껴 있던 흐린날씨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 - 나중에 돌아와 다른 사진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만큼 우중충하지 않고 오히려 단정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발굴조사 기간이라 잔디도 관리가 되지 않은 채 풀이 웃자라 있었나 보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작은 부스의 관광안내소가 있었고 아주머니 - 라고 하기엔 조금 연로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는 점이다. 아주머니는 우리의 요청에 관광안내지도를 챙겨주시며 '발굴 중이라 조금 어수선 할 것'이라 설명해 주셨다. 절터로 들어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석등은 해체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파헤쳐져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앞에는 10차 발굴 중이라는 안내표지가 서 있었다. 

 

그렇다면 성주사지의 놀라움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 5층석탑(보물 제19호),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과 서 3층석탑(보물 제47호)등 1개의 국보와 3개의 보물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러번 말하지만 보물이니 국보니 하는 것은 단순히미적 완성의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 국보나 보물 지정은 희소성이나 예술성, 역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3기의 3층석탑과 하나의 오층석탑은 모두 만든 솜씨가 비슷하다. 그런데 3층석탑 3기 중 2기만 보물이다. 이는 보물을 지정할 때 대표성등이 반영되는데, 양식이 거의 같은 석탑이라 하나는 보물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보물도 국보도 아니지만 재미있는 석상이 있다. 전반적으로 마모가 심한 데다가 한쪽 귀는 훼손되었다. '코를 긁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 수난까지 당해 결국 시멘트로 땜질을 했다. 덕분에 괴기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표정이 꼭 동내바보라 표현할 만한 것이어서 거부감보다는 측은함이 생겨난다. 이래뵈도 엄연히 불상일 지언대 나는 이 바보스러운 모습에 부처의 가장 우둔했던 제자인 주리반특 존자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일찍이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주리반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반특의 형이 있었는데 반득이라 고 불린 그는 매우 총명했으나 아우인 반특은 머리가 과히 좋지 않았다. 하루는 반특을 안타깝게 여긴 형이 "너는 머리가 좋지않아 어려운 것을 기억할 수 없으니 매우 쉽고 간단한 어귀나 외우도록 해라."하며 다음과 같은 어귀를 일러주었다.

 

" 삼업(三業), 즉... 신체의 동작,언어,의지의 작용를 악(惡)으로 하지말지며, 모든 생명이 있는 중생(衆生)을 상해(傷害)하지 말 것이며, 오직 바른 생각으로 공(空)을 보면 무익(無益)한 고통(苦痛)이 없을지니라."

 

그러나 반특은 이러한 간단한 가르침 조차 아무리 읽어도 외울 수가 없어 크게 실망한 나머지 석가를 찾아갔다. "세존(世尊)이시여, 저는 아무래도 바보천치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세존의 제자가 되기는 애당초 틀렸나 봅니다."

 

이 말을 들은 석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보이면서 스스로 바보인 줄 모르는 사람이 정말 바보다. 그런데 너는 스스로 바보인 줄 알고 있으니 정말 바보는 아니다." 그러면서 석가는 반특에게 한 자루의 빗자루를 주면서 전에 그의 형 반득이 반특에게 알려준 어귀의 뜻을 간단히 줄여서 "먼지를 닦고 때를 씻으라." 고 가르쳐 주었다. 우둔하지만 남달리 정직한 반특은 이 때부터 열심히 그 어귀를 외우는 한편 다른 동료들의 신발의 때를 씻어주고 집안의 먼지를 깨끗하게 닦는등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지저분한 것은 모두 깨끗히 닦는 행위로 도를 쌓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자루의 빗자루와 한 귀절의 사색에 젖어 전념한 덕에 반특은 드디어 자기 마음의 때와 먼지, 곧 번뇌의 때와 먼지를 씻어 낼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번뇌에서 벗어난 그는 드디어 훌륭한 부처가 되기에 이르렀다. 석가는 반특의 예를 들어 많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를 닦음에 있어 결코 많은 교리를 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보라, 반특은 비 한자루로 세상을 깨끗이 하는 일에 열중이더니 어느틈에 너희들보다 먼저 도를 깨닫게 되지 않았느냐?"

 

성주사지를 떠나면서도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저 우둔한 모양새의 석불입상이다. 다음에 답사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는 국보나 보물이 눈에 들어올 지도 모른다. 아마 그만큼의 배경지식또한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마음을 움진인 것은 저 석불입상이라는 점이며, 이렇게 단 하나의 의미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답사는 성공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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