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조금 넘어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꽤나 일찍 들어온 기분이다. 생각해 보니 요즘 늘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곤 했다.
오늘은 어제까지 준비하던 수업 발표를 마무리하고 오랫만에 차를 마시며 5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작품 이야기부터 시작해 정치, 종교, 연애를 거쳐 노후의 삶에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오랫만에 즐거운 수다였다. 어제 푹 자지 못했기에 잠을 자기로 한 시간이었지만 이야기 하느라 앉은자리에서 5시간을 내리 보낸 것이다. 덕분에 저녁6시부터 시작된 수업은 안드로메다 캠퍼스에서 듣고 왔다.
아래는 오늘 발표 자료중 앞 부분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든지 무중력 공간의 탄생같은 개념도 꽤나 흥미롭고 가라타니 고진이 우리나라의 학생운동과 근대문학(소설)을 비교한 부분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근대문학의 종언'과 2000년대 소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소설의 특성은 리얼리즘에 있으며, 소설이 예술로 간주된 것은 그것이 허구를 통해 ‘진실’을 파악한다고 간주되었을 때라고 했다. 80년대 소설과 90년대 소설 그리고 2000년대 소설을 각각 펴낸 민족문학연구소는 『소설 이천년대』머리말에서 “80년대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집단의 시대였고 진보를 향한 열정의 시대였다. 개체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우리들 삶의 민주화를 모색했던 작가들의 한 시대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한다. 즉 당시의 소설은 현실변혁을 외쳤으며 행동주의적 면모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소설이 작용했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리얼리즘이 점점 약화되고 급기야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저작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한국에서의 근대문학(소설)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말한다.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리적 표현으로 학생운동이 활발했듯 문학도 대리적 표현으로 모든 것을 떠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운동이나 정치운동이 가능하게 된 지금 학생운동이 쇠퇴했듯 문학도 쇠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문학에는 그런 기능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에서 문학(소설)이 일찍이 가졌던 것과 같은 역할을 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해도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자본주의와 국가의 운동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적 환경을 파괴하더라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한복판에서 대항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에 관해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2000년대의 소설은 시대적으로 현재의 이런 ‘근대문학의 종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평론가 이광호가 2000년대 소설을 두고 역사적 현실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 이른바 ‘무중력 공간의 탄생’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무중력공간의 탄생’이 모럴이 없는, 그저 가벼운 문학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인력으로부터 탈출한, 투쟁이나 저항 등을 본원적으로 무시한 이 소설들은 분명 이제까지 근대 문학의 담당해 왔던 기능들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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