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419 물건들을 정리하며 이사를 했다. 일반적인 살림에 비해 단촐한 생활이었기에 상자 서너개에 모든 짐이 들어갔다. 사실 더 줄일 수도 있을것 같았다. 꼭 가져갈 필요가 없는 것은 버리고 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쉽게 그러하지 못하고 결국 옷걸이 하나까지 모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이사를 다 하고 나서 또 한 번 짐정리를 했다. 같이 정리하던 우리집 장남은 상자를 하나 가져오며 '향후 10년 동안 쓸 일 없는 것은 여기다가 버릴 것'을 명했다. 하지만 내가 보아도 분명 향후 10년간 쓸 일이 없어 보이는 물건도 그것이 아직 기능상 이상이 없으니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는 기능상 이상이 없으나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애착이 간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버려진 물건을 많이.. 2012. 2. 6. 도시적 삶의 환경성과 전원생활 최근 읽은 하버드대학 경제학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는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국내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말한것 처럼 그의 요지는 일반 사람들의 상식과는 반대로 도시가 훨씬 더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써 자가용을 이용하는 지역보다 일인당 에너지소비량나 탄소발생량이 적을 뿐 더러 그들이 사는 아파트는 열효율 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직적으로 설계된 도시의 빌딩은 그만큼 녹지를 덜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신빙성 있는 말이며 많은 부분 수긍이 간다. 하지만 동시에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나는 그가 도시의 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대조를 한 것은 대부분 도시에서 가까운 교외의 지역이었다. 그는 .. 2012. 1. 10. 눈을 맞이하다 잠시 서울을 비운 지난 금요일 눈이 내렸다. 덕분에 올해는 한 두 송이 날리던 어설픈 눈 말고 제대로 된 눈을 아직 보지 못했었다. 오오후 5시무렵.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시야를 가려 창 밖 풍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내렸다. 기쁜 마음에 집 밖을 나오니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채 30분도 내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 양이 많았던지 세상은 이미 하얗게 변해있었다. 겨울에 맞이하는 대부분은 풍경은 밋밋하기 짝이 없다. 푸르른 잎이 있는 것도 아니요 가을처럼 단풍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있는 가로수를 동반한 잿빛 풍경만이 있을 뿐이다. 산에 가면 사철 푸르다는 소나무가 있지만 햇빛이 강렬하지 않아 색채도 옅다. 이런 이유로 종종 주위의 지인들이 내게 겨울의 가 볼 만한 곳을 추.. 2011. 12. 28. 나무가 되고 싶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가 부럽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평소 나무의 우직함이 좋았다. 바람이 불거나 눈과 비가 몰아쳐도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날엔 더더욱 좋았다. 싱그러운 초록의 잎은 햇살을 투과해 빛났고 나는 그것을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입가엔 절로 피어나는 미소와 함께. 그래서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나 늦봄이나 여름이라고 혹자가 물으면 대답한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는 나무처럼 살기 쉽지 않다. 언제나 기회를 엿보아야 하고 고통을 부정하며 쉬운길을 찾으려고만 한다. 또한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제대로 모르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비교조차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다. 비교를 시도하기 .. 2011. 12. 20. 앎과 실천 1. 대학 교내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머님들에 대한 칼럼(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09040.html)을 보고나서 도서관에서 쪽잠이 들었다. 그러다 깼는데 이유없이 시 한 편이 문득 떠올랐다. 활동적이었던 내 누이가 20대 초반에 보던, 지금은 고향집 책장 한구석에 꽂혀있는 책 에 나오는 유명한 시. 나는 어릴적 하릴없이 책장을 뒤적거리다 이 책과 이 시를 발견했던 것이다. - 다시 /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中 헌데 사실 나는 사람은 희망인 것 같으나 사람만이 희망인지는 잘 모르겠다.. 2011. 12. 9.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존재하는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라는 유명한 말은 차지하고서라도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는 것이 당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아무도 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길은 누군가가 지나갔던 길이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자체도 아마 누군가가 적어도 한 번쯤은 지나간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길이든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두려워 할 것 없다. 누군가가 지나갔다면 나 또한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지금도 사람들이 걷고싶어 하는 것은 그 길이 이전에 걸었던 이들로 인해 평탄하고 순탄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시시해 할 것도 .. 2011. 12. 2. 설득하는 사랑, 설득당하는 사랑 설득하는 사랑, 설득당하는 사랑 /교내신문 칼럼 기고 일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는데 커다란 창밖으로 눈길을 끄는 풍경이 벌어졌다. 한 커플이 맞은편 건물 앞에서 몇 분 동안 부둥켜안고 꼼지락 거리고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둘 다 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필 그 맞은편 건물이 모텔이었다. 수많은 건물 구석 중 하필 저 건물 앞에서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싶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갑자기 이 두 남녀가 모텔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오!"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금세 여자가 뛰다시피 밖으로 나왔고 남자도 뒤따라 나왔다. 다시 건물 앞. 남자는 계속 뭐라 여자에게 말했지만 결국 이 둘은 저 멀리 골목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테이블.. 2011. 12. 2. 산책 하늘은 흐렸으나 기온은 간만에 풀려 따뜻했다. 오전에 일정을 끝내고 오후에 3시간 정도 여유롭게 산책을 했다. 조금 걷다보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역시 춥지는 않았다. 서울은 많은 것들이 혼재해 있는 장소인것 같다. 종종 보이는 고즈넉함과 아름다운 것들. 하지만 오늘 재개발지구를 둘러 이어진 서울성곽길을 걸으며 나는 서울을 떠나 살겠노라 생각했다. 성곽의 능선에서 바라본 옹기종기를 넘어서 빼곡한 건물 풍경이, 그래서 내가 '아 서울에는 1000만이 사는구나..'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만든 그것이 나를 자극한 것이다. 다음날 감기몸살에 앓아 누웠다. 2011. 11. 27. 2009년을 떠올리며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내가 몇 년전 여행했던 그곳으로 떠난다. 덕분에 찾아온 옛 생각에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 중 당시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한 사진에 눈길이 갔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어느 아침의 풍경이었다. 돌이켜 보니 많은 것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해가 뜨기 전 새벽 같이 찾아갔던 들판의 풍경과 아침의 공기 그리고 내음까지. 한껏 들이마시면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과 누렸던 여유로운 오후녘 그리고 한 모금의 술 이런 것들이다. 정말이지 그립다. 동시에... 다시는 그런 여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두렵다. 사진 / 2009년 6월. 호주 보웬의 한 외곽 농장의 이른 아침. 2011. 10. 21.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47 다음